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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ㅇㅇㅇ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90이 훌쩍 넘은 연세로 걷기도 힘들어 아드님께서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안녕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주름으로 덮인 얼굴이 환해지며 눈빛이 초롱초롱 해지십니다. 귀도 살짝 어두우셔서 진료 중에 제 목소리를 돋우어야 하지만 ㅇㅇㅇ님과의 대화는 항상 즐거워 대기중인 환자명단이 길더라도 몇 분씩은 꼭 더 길어집니다. 오늘도 교회이야기, 거동이 어려워 할 수 없는 일들(가고 싶을 때 교회 가기, 집안일 거들기 등), 효성 깊은 아드님과 며느님에 대한 고마움 등등을 말씀하시는데, 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분들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여서 진심으로 흥미 있게 들었습니다. 약 처방 해드리고 건강 하시라고 인사를 드리는데 휠체어를 끄는 아드님의 손길에 이끌려 진료실을 나가시면서 다시 아이 같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시면서도 언듯 스치는 아쉬운 마음이 보여 저도 가슴이 시렸습니다.
저는 이분을 12년 넘게 뵈어 왔습니다. 사실은 ㅇㅇㅇ님 뿐만 아니라 이분의 돌아가신 남편분, 아드님, 며느님까지 내일내과가 개원한 해부터 쭉 뵈어 왔습니다.
12년 전 남편분께서 처음 받아보신 위내시경 후에 제가 어렵게 위암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했을 때 ㅇㅇㅇ님은 작은 새처럼 부들부들 떠셨습니다. “그래도 설마 잘못되진 않겠죠?” 라고 물으시며 그 조그맣고 야윈 몸을 떨며 우셨습니다. 바램과는 달리 그 남편분은 수개월 후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저의 진료실을 방문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지만 세월이 가며 점차 안정되어 보이셨고 그래도 남편분의 병을 찾아내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저에게 감사를 표하시곤 하였습니다.
남편분께서 돌아가신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아드님께서 공단검진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저는 별 걱정 없이 위내시경 검사를 시작했는데, 위 중간부에 조금 헐어 있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모양이 썩 좋지 않아 보여 조직검사를 하면서도 이분의 어머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몇 일간 저도 암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결국 이 아드님도 위암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초기에 발견된 위암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완치되어 지금까지 건강하시지만, 당시 어머님인 ㅇㅇㅇ님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그래도 아드님의 수술을 담당한 교수와의 면담 자리에서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으로 수술을 해달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외아들마저 위암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집안의 어른으로서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ㅇㅇㅇ님…
저는 ㅇㅇㅇ님께서 일생동안 가장 사랑하셨던 두분에게 암 진단을 내린 의사입니다. 제 입을 통해 내린 진단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으셨을 ㅇㅇㅇ님을 볼 때마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듭니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한 사람을 주름진 얼굴을 활짝 피시면서 반길수 있을까? 진료실을 떠나며 진심으로 아쉬워할 수 있을까? 아드님께서 ‘원장님 바쁘시니 이제 가셔야죠’ 할 때까지 신변의 이야기를 아이처럼 쏟아 놓을 수 있을까?
의사란 가장 큰 슬픔과 아픔을 줄 수 있음과 동시에 최대한의 신뢰와 의지, 감사의 대상이 될수 있는 아주 희한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올해 2019년에도 부족하지만 저의 최선을 다해서 다른 분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도록 마음을 다시 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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